신심이 훌륭한 기도생활의 목표는 아니다.
신심은 덕행의 성장을 위한 일종의 수단이다.
신심 또는 위안이 부재하더라도
덕이 우리 안에서 살아 있고 번성한다면,
우리의 기도생활은 그 메마름에도 불구하고
건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
-
글목록
- 2019년 3월
- 2018년 7월
- 2018년 4월
- 2017년 8월
- 2017년 6월
- 2017년 3월
- 2017년 2월
- 2016년 12월
- 2016년 8월
- 2016년 5월
- 2016년 4월
- 2015년 10월
- 2015년 8월
- 2015년 6월
- 2015년 5월
- 2015년 4월
- 2015년 3월
- 2015년 2월
- 2015년 1월
- 2014년 12월
- 2014년 11월
- 2014년 10월
- 2014년 9월
- 2014년 8월
- 2014년 6월
- 2014년 4월
- 2014년 3월
- 2014년 2월
- 2014년 1월
- 2013년 12월
- 2013년 11월
- 2013년 7월
- 2013년 4월
- 2013년 2월
- 2013년 1월
- 2012년 9월
- 2012년 8월
- 2012년 7월
- 2012년 6월
- 2012년 5월
- 2012년 4월
- 2012년 3월
- 2012년 2월
- 2012년 1월
- 2011년 12월
- 2011년 11월
- 2011년 10월
- 2011년 9월
- 2011년 8월
- 2011년 6월
- 2011년 5월
- 2011년 4월
- 2011년 3월
- 2011년 2월
- 2011년 1월
- 2010년 12월
- 2010년 11월
- 2010년 10월
- 2010년 9월
- 2010년 8월
- 2010년 7월
- 2010년 6월
- 2010년 5월
- 2010년 2월
- 2010년 1월
- 2009년 12월
- 2009년 11월
- 2009년 10월
- 2009년 9월
- 2009년 8월
- 2009년 7월
- 2009년 6월
- 2009년 5월
- 2009년 4월
- 2009년 3월
- 2008년 11월
- 2008년 10월
- 2008년 5월
- 2008년 2월
-
그 밖의 기능